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스코? 쿠스코! (문단 편집) == 제작 비화 == [[라이온 킹]]의 공동 감독 로저 앨러스가 라이온 킹 이후 차기작을 물색하던 중 남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아 [[잉카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태양의 왕국(Kingdom of the Sun)》을 구상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음악 작업을 총괄하는 크리스 몬탄이 이전부터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한 [[스팅(가수)|스팅]]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라이온 킹을 통해 [[엘튼 존]]이 거둔 성공에 고무된 스팅이 이를 수락했다. 유머러스한 악동으로 인기를 끌던 [[데이비드 스페이드]]와 대배우 [[어사 키트]]의 성우 출연까지 확정되었다. 태양의 왕국은 모두가 성공하리라 예상했고 모두가 성공해야만 한다고 여긴 작품이었다. 각본 작업이 계속되었고 디즈니의 관계자들과 감독들에게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좀처럼 각본이 완성되지 못하고 유동적이었다. 안정된 각본 없이도 스팅이 4곡의 뮤지컬 노래를 만들었지만 지속적인 각본 변경 탓에 잦은 수정이 반복되었고 음악 지식이 부족한 로저 앨러스가 노래의 진행 방식까지 세세하게 관여하려 하여 음악 작업에 충돌이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간이 흘러도 제작이 거듭 지연되자 제작 시작 2년이 지난 시점에 마크 딘달이 감독으로 투입되어 로저 앨러스와 마크 딘달의 공동 연출 체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태양의 왕국은 중간 내부 시사에서 엄청난 악평을 들어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받았다. 문제는 [[맥도날드]]의 [[해피밀]] 계약 등 관련 상품 제작 및 홍보 계약이 이미 정해져 있어 개봉일을 옮길 수 없었고, 제작에 남은 시간은 약 1년 6개월으로 매우 빠듯했다. 프로젝트의 취소까지도 거론된 위기 속에서 결국 로저 앨러스는 연출 권한을 잃어 마크 딘달의 단독 연출 체제로 변경되었으며, 본래 판타지 뮤지컬 장르인 내용을 왕자가 라마가 된다는 내용만을 남기고 대부분의 요소들을 제거했다. 각본과 기획을 전면 수정하면서 모든 캐릭터들이 대거 삭제되거나 설정이 바뀌었는데, 대표적으로 본래 주인공인 [[파차]]가 서브 주연으로 밀려나고 캐릭터의 나이대가 청년에서 중년으로 바뀌어 성우도 [[오언 윌슨]]에서 [[존 굿맨]]으로 교체되었다. 스팅이 만든 뮤지컬 수록곡들은 변경되기 전의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모두 편집한 뒤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되었다. 성우들의 대사 녹음과 20% 가량 완성된 애니메이션은 모두 폐기되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 만들어졌다. 스팅은 대대적인 각본과 캐릭터 변경을 통해 그동안 작곡한 노래들이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태양의 왕국과의 작업 여정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앨범 작업에 몰두했다. 이후 제작진은 변경된 각본과 스토리보드를 들고 찾아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사용될 곡 'Perfect World'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노래의 스타일도 변경된 각본에 맞추어 기존의 장엄하고 신화적인 노래에서 잉카 버전의 라스베가스를 연상시키는 곡으로 변경되었다. 스팅은 더 이상 영화에 깊게 관여하지 않지만 여전히 참여를 지속하여 각본의 수정에도 일조하였다. 중간 수정 과정에서 영화의 결말은 쿠스코가 자신의 테마파크를 파차의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 짓고 즐겁게 노는 것이었는데, 이를 본 스팅이 테마파크를 다른 곳에 짓는 결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좋은 지적이라 받아들여 결말을 파차의 집 근처의 폭포에서 다함께 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뒤 제작진은 스팅에게 엔딩 크레딧에 삽입될 노래를 요청했고 스팅은 'My Funny Friend and Me'를 만들었다. 노래 뿐 아니라 스코어 작업에서도 대대적인 변경이 있었다. 처음에는 마크 셰이먼을 작곡가로 고용해 작업을 진행했는데, 음악이 너무 정신없어 모두 다시 작업해야 한다는 내부 평가를 받았다. 이에 셰이먼이 수정 작업을 진행해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기존 음악에서 인물들의 대사가 잘 들리도록 바꾸었으나 당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 토마스 슈마허는 음악이 영화를 제대로 받치지 못하고 영화를 더 빛나게 하지 않는다며 혹평했다. 결국 스코어 작곡은 마크 셰이먼에서 [[존 데브니]]로 변경되어 더 클래식하고 유머보다는 감정을 부각시키는 방향의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쿠스코? 쿠스코!'는 엄청난 슬랩스틱과 상황극, [[블랙코미디]], [[제4의 벽]] 부수기, 디즈니의 클리셰 파괴[* 디즈니의 클리셰들을 비꼬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악당이 언제나 주인공보다 먼저 도착한다거나 거대화, 추락사 등.] 등 당시 디즈니에겐 생소한 유머 감각으로 웃음과 감동을 주는 버디 코미디 활극이 되었다. 로저 앨러스는 감독 하차 당시 자신이 기획해 자식처럼 만들어온 작품이기에 상실감이 크다며 슬픔을 표했다. 이후 《[[릴로 & 스티치]]》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고, '환타지아 2006'에 들어갈 《성냥팔이 소녀》를 작업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환타지아 2006은 취소되고 성냥팔이 소녀는 단편 영화로 공개했다. [[아일랜드]]의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구상했고 로이 E. 디즈니가 마음에 들어했지만 로이 E. 디즈니와 내부에서 알력 다툼을 한 [[마이클 아이스너]]가 제작을 진행시키지 않았다. 결국 로저 앨러스는 2003년 디즈니를 퇴사해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켈트 신화를 담은 영화 'Tam Lin'을 만들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소니에서 《Open Season》(2006) 단 한 편 만을 만든 뒤 대형 제작사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느껴 소니에서 퇴사했다. 2014년에 가진 인터뷰[* [[https://fumettologica.it/2014/12/intervista-roger-allers-re-leone/2|원문]]]에서 태양의 왕국 제작기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제작 하차 당시에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하여 감정을 크게 표출하지 않았지만 내면은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수장이 자신의 신화적인 서사나 작품 속 잉카 문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하차 이후 자신의 구상과 이야기를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요소들만 남겨두었다며 당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 토마스 슈마허를 비난했다.[* 실제로 쿠스코? 쿠스코!의 제작기를 담은 영화 《The Sweatbox》에서도 토마스 슈마허가 강한 어조로 "It doesn't work.(그건 맞지 않아요.)"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모습이 유독 자주 나온다. 이후 2002년 토마스 슈마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떠나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으로 옮겼다.] 또한 영화 제작 기간이 더 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뮤지컬 곡을 만든 가수 [[스팅(가수)|스팅]]은 뮤지컬 곡들이 편집되고 영화가 크게 변경되자 낙심하고 기대를 접은 것으로 보였지만 주제곡 'My Funny Friend and Me'[* «유로비트 디즈니 3(2001)»에서 Mickey B.가 커버했다.]가 [[아카데미 주제가상]]의 후보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스팅은 영화 작업을 이어나가 [[멕 라이언]]의 [[케이트 앤 레오폴드]]와 [[니콜 키드먼]]의 [[콜드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가 되었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훗날 스팅의 아내이자 배우 겸 영화 감독 트루디 스타일러가 당시 태양의 왕국의 제작 비화를 담아낸 2002년 다큐멘터리 영화 [[https://archive.org/details/SweatboxDocumentaryUneditedVersion|The Sweatbox]]를 찍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